드디어 첫 유저 전환이 생겼다. 여름이었다. (5월부터 7월까지의 일)
서론 : 날 구하러 왔구나? 아니 나도 갖혔어
원래 인생은 스펙타클하다지만 지난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은 쓰으으으으펙타클이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코파운더로 창업을 했다가 복무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후일을 도모하며 무산되었고, 그 뒤로 좋은 말로 휴식 나쁜 말로 개백수 생활을 하며 2~3개월 가량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찮게 3년 전 학교 현장실습으로 나갔었던 스타트업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데 문득 내가 떠올랐다는 것이다(이때까진 난 디자인만 할 줄 알았다.). 그렇게 죽이 될지 밥이 될지 결과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함께 하게 되었다.
나에게 연락을 준 스타트업(이하 'A')은 요 몇 년 간 세간의 관심이 많아진 반려동물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이었다. 원래 서비스 중이던 프로덕트에 오가닉 유저 유입이 필요한데 그 작업의 일환(겸 새로운 CC 확보)으로 펫 커뮤니티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마침 내가 창업하면서 배포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개발자를 위한 커뮤니티였다. 슬러시라고 나름 배포한지 한 달만에 유저 1,000명을 모은 꽤 괜찮았던 프로덕트였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슬러시를 만들기 시작한 건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모인 후에 합류한 거라 사실상 디자인만 하면 되던 상태였다. 이번 파일럿 프로젝트는 진짜 맨땅에 헤딩하며 나를 갈아넣어야 하는 상태였다 ㅋㅋ 아무리 맨땅에 헤딩이라지만 가설 검증이나 문제 해결보다는 마냥 디자인이 좋았었는데 1초라도 빨리 행동하는 게 중요한 이 프로젝트에서 디자인만 할 수는 없었다. 유사 PM처럼 일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5월에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한 달 여만에 프로덕트를 만들었고 그 이후론 인스타를 중심으로 마케팅 채널을 만들었다. 사실 프로젝트에 투입된 팀원들이 전부 여기에만 몰두했다면 2주 정도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사이즈였지만 다들 원래 서비스 중이던 프로덕트 일과 함께 병행하느라 조금 늦어졌다.
본론 1 : 알고리즘의 은혜가 끝이 없네
커뮤니티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혹자는 브랜드의 찐팬을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를 개설한다고 하지만 난 반대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행동이 곧 커뮤니티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발 사진을 올리니까 거긴 무신사가 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팀이 처음에 원했던 건 디시인사이드의 멍멍이 갤러리 같은 분위기의 펫 커뮤니티였다. 각자 반려동물 자랑하고, 질문하고, 소통하는 뭐 그런. 하지만 이건 바로 앞에서 얘기했던 내용과 맞지 않는 기획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게 하려면 사람들을 모이게 할 동기가 필요했다. 즉, 멍멍이 갤러리의 분위기는 아직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레벨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동물 밈'이었다. 사람들은 웃긴 것에 모이게 되어있다. 재밌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꾸준히 동물 밈을 모으고 각 마케팅 채널에 업로드했다. 언젠가 알고리즘이 우릴 띄워줄 것이라 바라면서 말이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났으려나. 올렸던 영상 중 하나가 갑자기 흔히 말하는 떡상을 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릴스 알고리즘에 반영된 것이다. 근데 좀 크게 반영됐다.. 여러 인과관계가 있겠지만 정확하게 알고리즘에 반영된 원인을 알 수 없어 운이라고 판정했다. 사람들이 웃긴 것에 반응한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 사건이었다.
본론 2 :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응?
사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 팀은 떡상한 영상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상 조회수가 높아져 계정 조회 기회가 많아진 이때를 잘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인스타에서 우리 계정에 제재를 가했다. 릴스 업로드를 금지시킨 것이다. 마침 이때 반려인들에게 팔로워를 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릴스도 올리던 때라 모든 행동을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릴스로 먹고 사는 인스타 계정에 릴스 업로드 금지라니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구글링 해보니 24시간이면 사라진다, 재로그인하면 풀린다 등의 방법이 있었지만 모두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업로드 제재는 일주일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 일주일의 시간동안 멍때리고만 있진 않았다.
제재를 당하기 거의 직전에 업로드했던 영상이 있었다. 릴스의 제목을 도저히 정할 수가 없어 '제목 추천 받습니다'라는 제목을 정했는데 사람들이 댓글로 제목을 정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제목학원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영상도 알고리즘의 수혜를 입어 30만 뷰 가량의 조회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여기서 착안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게된다. '어차피 릴스도 못 올리는 마당에 사람들을 프로덕트로 유입할 컨텐츠를 만들자. 제목학원을 차용해서!'라는 아이디어였다.
본론 3 : 첫 전환 유저 등장
제목학원에서 착안된 이 아이디어는 곧바로 디벨롭되기 시작했고 프로덕트 배포 준비와 함께 일주일 정도만에 업로드 준비를 마쳤다. 바로 어제 배포와 업로드를 진행했고, 사람들이 열심히 참여하는 중이다(내일인 23일까지 진행된다.). 페이드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참여율이 나온다는게 너무 감사하다. 심지어 참여한 유저 중엔 프로덕트에 회원가입한 유저도 있었다. 야호
결론 : 넥스트 레벨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한 달만에 커뮤니티 MVP 구축 👉 일반적인 커뮤니티 형태에서 유머 컨텐츠 중심으로 피보팅 👉 마케팅 채널 개설 후 꾸준히 밈 업로드 👉 알고리즘 수혜 입고 프로덕트 유입 준비 👉 마케팅 채널과 프로덕트를 연결하는 목적의 컨텐츠 진행 해 연결 진행중
아직 PMF가 맞는지도 모르고, 유저가 얼마나 모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패할지 모르는 막막한 길이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도전하는 중이다. 얼마전 대표님과 얘기하면서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지만 꼬들밥으로 최대한 만들겠다고 얘기했다.